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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동정>

우영

 

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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 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들은 모두가 <동정>이란 단어를 'com-' (역주 : 함께라는 뜻) 이라는 전철과, 원래는 <참고 견딤>이라는 의미였던 'passio'라는 단어로 만들었다.

다른 언어들, 예컨대 체코어, 폴란드어, 스웨덴어 등은 이 개념을 하나의 명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. 다시 말하면 <함께>라는 의미의 전철과 <감정>이라는 단어로 구성되는 명사이다. (체코어 : sou-cit; 폴란드어 : wspol-ucucie; 스웨덴어 : med-känsla) 

 

 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들에서 이 'compassio'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. 우리는 냉정하게 어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볼 수 없다. 혹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한다.

대개 이와 동일한 뜻을 지닌 다른 말(프랑스어 : pitié; 영어: pity; 이태리어: pietà 등) 에는 뿐만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관대한 마음씨 같은 여운이 모름지기 깔려 있다.

Avoir de la pitié pour une feme는 <우리는 이 여인보다 입장이 낫다, 우리는 이 여인을 굽어본다, 우리는 자신을 낮춘다> 를 뜻한다.

 

  이러한 근거에서 <동정> 이란 말은 불신을 야기시킨다.

그것은 사랑과는 그다지 많은 관련이 없는, 부차적으로 느껴지는 좋지 않은 감정을 표현한다.

누구를 동정하여 사랑한다고 함은 그를 진정하게 사랑하지 아니함을 일컫는다.

 

  이 말을 <참고 견딤> 이라는 뿌리로부터가 아니고 <감정>이라는 명사에서 만들고 있는 언어들에서도 이 말은 대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.

하지만 이 말이 부차적인 좋지 않은 감정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는 없다. 이 말의 어원이 지닌 신비한 힘이 이 말을 다른 빛을 띠도록 하며, 그것에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한다.

<함께 하는 감정>이란 어원의 동정은 다른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한다. 기쁨, 두려움, 행복, 고통 등.

이러한 동정 (soucit, wspolucucie, medkänsla 등) 은 따라서 감정적 표상력의 극치를, 감정 텔레파시의 기법을 표현한다.

감정 체계에서 그것은 제일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.

 

 

  테레사가 자기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꿈을 꾸었을 때 이는 그녀가 몰래 토마스의 서랍을 샅샅이 뒤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만 것이었다.

다른 여자가 그렇게 했던들 그는 그녀와 더이상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.

테레사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. 그 대문에 그녀는 말했다. <나를 쫓아버려요!> 하고.

그러나 그는 그녀를 쫓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두 손을 잡고 그녀 손가락 끝에 키스를 했다.

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순간 스스로가 그녀 손톱 밑의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.

마치 그녀의 손가락 신경이 직접 그의 뇌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.

 

  느낌을 함께 하는 이 <동정> 의 저주스런 능력을 갖지 못한 자는 테레사의 태도를 오로지 냉담하게만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.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영역은 신성하기 때문이다.

개인적으로 왕래했던 편지들을 넣어 둔 서랍은 남이 열지 않는다.

그러나 <동정>은 토마스의 숙명이 (혹은 저주가) 되어 버렸기 때문에, 그 스스로가 자기 책상의 열려진 서랍에 무릎을 꿇고 사비나가 쓴 글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듯 여겨졌다.

그는 테레사를 이해하고 있었고, 그는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오히려 더욱더 사랑했던 것이다.